비를 맞으며

 

마음에도 젖지 않은 빗물이

신암동 하수구에서

가난이 녹은 눈물에 불어나고

낮은 구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자 하늘조차도.

 

땅의 주인이 되어져 있지 못한

보리이삭이 잊혀지고

편히 잠들지 못하는

먼저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며

비는 떨어지고 있었다

 

숨어 있는 꽃을 찾아

바람에 치이는 구름 낮은 자리에

우리는 오늘도 서 있고

오늘만은 실컷 울어도 좋으리

오늘만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젠 그만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자

보리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태양은 숨어 있고

남루한 풀잎만 무거워진다

 

살아 있다는 것으로 비를 맞는다

바람조차 낯선 거리를 서성이며

앞산 흰 이마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