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문득

 

작디작은 꽃잎마다

손톱 만한 그늘을

하나 씩 드리우고 있는

저들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 볼 때에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다

높고 보다 큰 것에

이왕이면 더욱

찬란한 것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인지

낮아지면 낮아지는

그만큼 또렷해지는

진실로 아름다운

얼굴과 얼굴

 

사랑하는 이여,

우리도 키 작은

팬지꽃처럼 조금만

키를 낮춰준다면

태산같던 괴롬도

생의 무게도 반반

나눌 수 있지 않겠나

 

길을 가다 문득

화단 가득히

올망졸망 피어있는

팬지꽃을 들여다본다

 

그 아래 오순도순

길을 나서는 하찮은

개미들의 행진조차

오늘은 도무지

예사롭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