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인도와 네팔을 오고가며 사람을 잡아먹은 암호랑이.

참파왓 주에서 활동하다보니 참파왓 타이거 Champawat Tiger

라고 불리던 이 녀석이 추정으로만 436명을 죽였다고 함.


엽기적인 것은......


이 호랑이는 나이 들어 늙고 사진에서도 나오듯이 이빨이 하나는 부러지고 하나는 아예 없다.

보통 식인 호랑이라고 하면 덩치크고 힘쎄다...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덩치도 작고 나이들어 사진처럼 이도 부러지고 빠져서 사냥이 어려워 큰 초식동물 목덜미를 물기에

어려운 상황이 되자 그냥 발톱으로 내리쳐 죽일 동물을 고르게된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피해자는 대부분이 노약자...여자와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 호랑이 때문에 참파왓 주는 박살났다.


사람들이 무서워하서 농사일도 안 나가고 바깥으로 나가려하지 않고

결국 하나둘 떠나버렸다.


참파왓 영주들은 영지민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공권력으로 막으려들었지만

사람들은 분노하여 폭동 수준으로 덤볐다고 한다.


호랑이도 못 잡은 주제에 뭐 어쩌라고? 만만한게 사람이냐?

농기구 쳐들고 사람들이 살기어리게 으르렁거리니

영주들은 어이쿠야...무력으로 막을 게 아니라 호랑이부터 잡아야지 진정되겠구나



호랑이 사냥에 막대한 상금을 걸고 당시 인도와 네팔을 지배하던 영국 측에  하소연했다.


영국으로서도 이 근처에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 경제가 아주 박살나고 나아가 호랑이도 못 잡는다고

하자면 이건 굴욕이다


하여서 동원한게 



전투민족으로 이름이 알려진 네팔 구르카 병들이었다.

이들이 수백여명 동원되어 숲을 뒤지고 들쑤시자


참파왓 호랑이는 코웃음치듯이 달아났다.


무서운 건 이 식인 호랑이는 쇠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은 절대 덤벼드지 않은 영악한 점이었다.

즉 총과 칼로 무장하고 우르르르 몰려드는 사람에게 얼씬도 안하고 멀리멀리 달아났다.


이러니 악마라고 사람들은 호랑이가 아니라고 하여 두려워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이 호랑이도 사람 손에 죽게 된다.



영국군 육군장교 짐 코벳 대위에 의해서였다.




당시 인도에서 영국 귀족들이나 부자는 호랑이를 취미로 사냥하고 다녔는데

이렇게 엄청난 인해전술을 쓰며 편히 잡곤 했다. 하지만,위에 나오듯이 참파왓 호랑이처럼 영악한 것들은

사람이 몰려오면 알아서 달아나고 얼씬도 하지 않아 이런 방법으로 잡지못했다.


짐 코벳은 극히 일부 사람을 썼고 아예 사람을 수백여명 잡아먹은 식인 맹수와 1:1로 목숨걸고 싸우게 된다....


아무튼,  짐 코벳도 이걸 잡고자 1년 넘게 무수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처음에 멋 모르고 총가지고 숲으로 가니 쇠냄새를 맡은 참파왓 호랑이는 얼씬하지 않아서


그는 냄새 지우고자 쇠똥을 가득 총겉에 발라야했고 나중에 자기 옷이나 얼굴에까지 칠하고 숲에서

숨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마을 사람들이 물려죽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피해자 상태를 확인해보고

여러 모로 신경쓰면서 호랑이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다녔다.


코벳은 회고록에서 쓰길





그 호랑이는 날 피해다니면서도 열심히 사람을 먹어치우는 건 그대로였다. 며칠 전 내가 머물면서 생필품을 얻던 마을에서

15살 소녀가 그년에게 물려 핏자국만 남기고 죽었다.


마을에 들르니 유가족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난 더더욱 분노와 같이 오냐, 그렇게도 날 애먹이지만 난 결코 놓치지 않을테다! 마음을 먹게 했다.


마침내 1907년 5월 24일


이 호랑이가 16살짜리 소녀를 물어간 마을 근처에서 코벳은 작전을 바꾸기로 한다.

마을 사람 300여명을 동원하여 근처에서 시끄럽게 굴게 할 것. 농기구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쇠냄새를 풍길 것


사람들이 열심히 소리지르며 숲 여기저기에서 시끄럽게 굴며 농기구와 온갖 금속과 쇠를 들고 다니며 냄새를 풍겼다.



호랑이는 이를 피해서 협곡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게 최후였다


협곡 아래에 바로 코벳이 장전을 다하고 온 몸에 온갖 똥과 풀을 범벅으로 하고 나무 밑에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이 아니었다. 코벳은 여기서 1년 넘도록 그것을 놓치면서 실패한 것을 다 적고, 행동범위에서부터

모든 걸 세세하게 보고 관찰하며 계산하고 있었다.


냄새가 가득나서 그것이(물론 죽인 다음에서야 암호랑이라는 걸 알게되었지만) 올만한 곳, 마을을 다 조사하고

이쪽에서 사람들이 가득 있다면 그것이 피할 곳은 오로지 이 곳뿐이다!라고 다 계산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24일 정오가 지난 시각에 총소리가 울리며 드디어 참파왓 식인호랑이는 죽었다.



총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죽었지만 사후경직으로 꿈틀거리는 호랑이를 두고 사람들이 몰려가 

몇몇은 농기구로 쳐댔다. 그리고, 배를 갈라 위장을 조사하니 사람 손가락이 소화되지 않은 게 나왔기에

틀림없는 식인 호랑이였다. 


이 식인 호랑이를 잡으면서 코벳은 영웅이 되었는데 이후로 코벳은 식인 맹수 전문 사냥꾼으로 전설이 된다.

그는 평생동안 12마리 식인 호랑이를 사냥했는데 그중 8마리는 1:1로 쏴죽였다. 

이 호랑이들이 잡아먹은 사람은 무려 900명이  넘는다!


코벳이 늘그막에 인터뷰로 말하길 죽인 12마리 가운데 가장 무서웠던 것은 파월가의 독신자( Bachelor of Powalgarh)

였답니다..라고 회고했다.


----구글에선 이 파월가의 독신자를 참파와트라고 엉터리로 제목을 단 사이트도 많다.참파와트는 위에 나온 머리 사진이 전부다.

당시 마을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토막냈기에 멀쩡한 머리 사진과 박제만 남게되었을뿐. 다른 사진은 없다. --


1930년대에 인도에서 180 여명을 잡아먹은 이 암호랑이는 코벳이 회고하길


"유일하게 총을 무서워하지 않은 겁없는 호랑이였죠."


코벳이 한가롭게 숲에서 총 들고 담배피울때 갑자기 나타나서 대낮에 6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호숫물을 마시고

느긋하게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다고 한다! 코벳도 경악하다못해 내가 꿈꾸냐!? 라고 했었다고

여지껏 호랑이나 다른 맹수들도 사람이 좋은 먹잇감이지만 더불어 무서운 적이는 걸 알기에 쇠냄새 나는

사람은 피했는데 녀석만은 안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코벳은 이 파월가를 2번이나 눈 앞에서 놓쳤다. 한번은 갑자기 나타나서 멍때려서 놓쳤지만 2번째는

코벳에게 굴욕이었다. 그것도 함정에 걸린 녀석을 놀라 놓쳤으니까.

"함정에 걸리고도 우렁차게 저지르는 녀석의 포효에 내가 놀라 떨었죠!  이런 건 처음이었어요. 여지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결국 코벳은 3번째 만나 파월가 머리에 총을 맞춰 기어코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내 일생 유일한 경의를 느끼게 한 짐승이여~라고 찬사를 바치기도 했다


그밖에 짐 코벳이 쏴죽여 전설이 된 다른 식인맹수도 있는데


바로 파나르 식인 표범이다.

Panar Maneater이라고 불리우는 이 표범은 1905년경부터 1910년까지 파나르 지방에서

사람들에게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참파와트 이후에 코벳이 쏴죽인 이놈은 참파와트 다음으로 약 400명을 잡아먹어....버린 호랑이 다음으로 식인 기록으로

남은 2번째 맹수다...


...즉 코벳이 무려 830여명을 잡아먹은 2마리 식인 맹수를 잡은 셈.


코벳은 파나르를 잡을때 더 지독했던 것이 표범답게 나무 여기저기로 이동하여 엄청 빠르기에 그야말로 지겨웠다고

회고했다. 


이건 도저히 홀로 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사냥에 능한 구르카병 50명을 동원하여 같이 잡아야 했다.

더더욱 무서운 건 참파와트와 달리 놈은 젊은 표범이었고 총을 든 사람도 죽여 잡아먹은 놈이라는 거다.

늙었고 총 가진 사람을 피한 참파와트와 달리 놈은 정반대라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게다가 젊고 팔팔하던 맹수였기에 숲에서 바람처럼 빠르고 그 어려움은 치가 떨렸다.


나도 이놈과 싸우다가 어깨와 등을 발톱에 긁혔다. 다행히 우리 모두는 가죽으로 몸을 보호할 보호복을 입어서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구르카병들의 사냥솜씨도 좋아서 녀석을 몰아가게했고 내가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행여나 내가 공로를 차지하고자 구르카병들에게 쏘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는 안했으면 한다. 제발 누가 좀

놈을 확실히 죽여줬으면 할 정도로 지겨웠다. 녀석의 등과 꼬리와 발에 구르카병들이 맞췄고 놈은 그 와중에도

달아나긴 커녕 우릴 역습하려고 했다. 그렇게 덤벼들던 그 놈의 머리에 내가 맞춰 마무리를 지었지만

놈은 죽은 그 순간까지 살기어린 얼굴을 하고 그대로 갔다...

이놈은 절대로 나 홀로 싸운다고 했다간 내가 놈의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었을 거다...


라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파월가가 우렁차고 포효로 코벳을 두려워하게 했다면

파나르는 그야말로 사냥솜씨와 그 근성으로 코벳이 잊지 못하게 했던 셈.


1918~1926년까지 125명을 잡아먹은 루드라프라야그 Rudraprayag 표범.

이놈도 파나르 식인 표범처럼 젊은 식인 표범으로 이 놈은 더 무섭게 집안으로 쳐들어가

남녀 안 가리고 잡아먹은 놈이었다.


이놈 잡느냐 코벳은 2달 넘게 추격전을 벌였지만...파나르보단 엄청 쉬운 놈이었다고 회고했다.

1926년 5월 2일, 코벳은 1:1로 놈을 쏴죽였다.



이렇듯 코벳이 죽인 식인맹수들에게 죽은 사람은 무려 1,500명이 넘는다.....

인도에서는 그를 사두(성인)라고 존경하고 동상이 세워질 정도였으니...


더 놀라운 것은 짐 코벳이 이렇다고 사냥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식인동물 사냥으로 전설이지 되려


사냥을 제한 및 반대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동물보호구역을 늘리고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내가 잡은 맹수들은 대부분이 사람이 자초한 게 많았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서식지 파괴. 먹이가 없으니 동물들이 먹이로 잡아먹을 게 가축이었고 사람들이 막으려다보니

이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면서 맹수들은 비로소 이 사람이라는 게 사냥하기 쉽다라고 알게되고 고기맛을 들이게 됩니다

식인맹수를 그저 죽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라고 외치면서 동물보호구역을 늘리고 동물사냥을 제한해야한다고 나서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