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임원 확대
고위관리직 여성비율 매년 조사
우수 기업에 인센티브 줄 것

경력 단절 문제
여성이 출산·육아 걱정없이 일하게
성 차별 없는 직장문화 조성 시급

여혐·남혐 이슈
남성과 여성의 소통·연대가 중요
성별 대립 격화 적극 대처할 것


여성 임원 왜 필요한가

  
“기업의 조직 문화를 가족 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지지가 필수입니다.”

지난 9월 취임한 진선미(51) 여성가족부 장관이 11일 중앙 SUNDAY 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민간 기업에서의 여성 임원 확산을 꼽았다. 30대 그룹 산하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3.2%에 머무르는 등 각종 여성 경제 평등 지수에서 매번 최하위권인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다. 올해는 ‘미투’ 돌풍에 여혐(여성혐오) 등 젠더 문제가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내년도 여가부 예산은 1조78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1.2%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진 장관은 “지난 두 달 동안 각계 각층의 말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며 “젠더 문제를 해결하면 남성도 행복해진다는 점을 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사시 38회) 출신인 진 장관은 호주제 폐지 운동 등 여성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2012년 19대총선에서 민주통합당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뒤 20대 총선 서울 강동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Q : 여성가족부 내년 주요 정책이 여성 임원 확산이라고 들었다.

A :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여성 법조인이 드물어 여성 변호사에 대한 의뢰인의 신뢰도가 낮았다. 정성껏 상담했더니 남성 변호사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받고 허탈했던 적이 많다. 이런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 한명숙 총리, 강금실 법무부장관, 김영란 대법관 등이 임명돼 미디어에 노출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오랫동안 고착된 성 고정 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유리천장, 유리벽을 깨는 여성이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은 여성에게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주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이 기업 성과를 높이고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Q : 내년 구체적인 목표가 있나.

A : “그 간 공공부문에서의 노력과 성과를 민간에 확산시키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개별 기업과 협약을 맺어 기업이 자발적으로 여성 임원 목표를 정하고 이행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기업 고위관리직 여성비율 통계를 매년 조사해 발표하고 기업의 자각과 사회적 관심을 높일 것이다. 고위관리직 여성비율 지표를 가족친화기업 인증기준에 가점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Q :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A : “경력 단절 문제에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임원이 될 여성 인재 풀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출산 육아와 같은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과 독박육아로 인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까지 복합적인 문제다. 여성이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출산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이고 성 차별 없는 직장 문화, 성 평등한 가족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


Q : 젠더 평등이 남성에게도 이득이라는 점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

A : “한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같이 행복해야 하는데 자꾸 남성 여성 문제로 분절된다.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할 것 같다. 공공기관은 여러 정책적 노력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민간 영역은 움직임 없이 계속 3%대에 머문다. 각종 의사 결정 구조에 여성 참여가 전 세계적으로 꼴등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계속 전문가를 만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듣고 있다. 꽤 많은 기업이 오랫동안 논의를 이어왔다. 최고경영자( CEO )가 앞장서서 시도하고 있는 곳도 많다. 이런 기업에 힘을 실어 드리는 방법을 찾겠다.”


Q : 자칫 기업내 성대결로 보일 수 있다.

A :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면 남성의 삶도 달라진다. 남성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오히려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일자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돌아간다. 중앙 SUNDAY 의 여성 임원 시리즈를 보았는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함께 혜택을 받게 한다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사례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런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성 임원 확대를 위한 정책이 남녀 모두에게 다 같이 공유되고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캠페인과 인식 개선을 병행할 예정이다.”


Q : 남성 육아 휴직 의무화 등을 도입하는 대신 세제혜택을 주는 등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가 중요해 보인다.

A : “구상하고 있는 데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밝히기는 어렵다.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기업 관계자들도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자발성을 유도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한 남성을 만나보면 ‘굉장히 생각이 많이 바뀌고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아이와 유대가 끈끈해 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생각할 틈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줘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남성 지지자를 모아야 한다.”


Q : 남성의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A : “여성 임원 비율을 비롯해 성평등 기업 문화 조성을 위한 남성의 자발적 모임, 남성 위원회 같은게 필요하다. 모든 계층, 구성원의 지지를 골고루 받아야 정책이 변할 수 있다. 호주제 폐지 때도 지금은 헌법재판관이신 이석태 변호사, 최재천 이화여대 생명과학부 교수, 법학자 김주수·김상용 등 많은 남성 지지자들의 법적·학문적 뒷받침이 있었다. 갈등 구조에만 초첨을 맞추면 섞여서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협력을 구해야 한다. 얼마 전 남성 CEO 와 남성 장관 등이 모인 자리에서 여성 리더를 지지하고 끌어주는 호주의 ‘변화를 지지하는 남성 모임( Male Champions of Change )’ 사례에 대해 들었다. 우리도 이런 모임을 벤치마킹해 볼 수 있다.”


Q : 여혐, 남혐 이슈가 갈수록 거칠어진다.

A : “성별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면은 우려스럽다. 성별 혐오는 사회구성원 간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폭력이나 실질적 차별로 번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성과 남성 간 소통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병역문제 등으로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여가부는 2030 세대가 참여하는 ‘청년 참여 플랫폼’을 통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실제 일상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도록 할 계획이다.”

전영선 기자 azul @ joongang . co .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