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콧이 에버튼으로 이적할 당시 페북에 썼던 글인데 아래 월콧 얘기가 좀 나와서 한번 올려봅니다.

월콧이 아스날에서 어떤 선수였다, 라고 요약해서 말하기엔 능력적으로 독특해서 "사용법"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고, 선수 외적인 상징성도 갖고 있어서 더 복잡합니다.

이 상징성이 앙리 베르캄프 같은 위대한 시절의 상징이면 편한데, 월콧은 이뤄지지 않은 희망의 상징이라.. 참 표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흐흐

제 생각이 아스날 팬들을 대표하는건 절대로 아니지만 오랜기간 멀찍이서 지켜본 사람의 견해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중간에 기독교적 비유를 좀 넣었습니다.




월콧은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요. 처음 아스날에 왔을때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당시 2부리그였던 사우스햄튼의 엄청난 유망주였고, 여러 팀간의 경쟁 끝에 아스날에 왔고 포스트 앙리로 기대받았으며, 앙리 이적 후 앙리의 14번을 받았죠. 아스날 팬이라면 누구나 월콧이 앙리처럼 되기를 바랐고, 저도 월콧을 No.1으로 좋아했던 적은 없었지만 나중에 그런 기대로 마킹된 레플도 샀죠.

월콧은 05-06 중간인 06년 1월에 영입되었지만 그 해 팀이 워낙 숨가쁜 순위경쟁을 한 터라 한 경기도 못뛰었습니다. 놀라운건 이 1부리그 0경기 선수를 잉글랜드는 2006년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진짜 웃기는 일인데, 그때 월콧에 대한 막연한 환상같은 기대가 아스날은 물론이고 잉글랜드 국가 전체에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죠.

어쨌든 당연하게도 월콧은 월드컵 0경기를 출장했고, 이어진 06-07 시즌에 리그도 좀 뛰었지만 컵대회 멤버로 주로 출전합니다. 당시 아스날의 컵대회 라인업은 늘 화제였습니다. 유망주 군단이라는 아스날 이미지가 그때까진 실제였으니까요.

특히 06-07 칼링컵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됩니다. 벵거는 결승까지 주전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젊은 선수들로 구성해 결승까지 승승장구 했고, 결승 상대는 첼시(첼시는 이미 로만 아브라모비치 시대였고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함)였습니다. 이때 주전 선수를 내보내느냐 vs 아니면 여기까지 끌고온 젊은 선수들을 그대로 내보내느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섰고, 젊은 선수들을 선택한 벵거는 조금 처절한 경기 끝에 영광스럽게 첼시 1군을 상대로 1-2 패배로 준우승을 획득합니다. 아스날 팬들은 대부분 이 선택을 욕하지 않았고 열심히 싸워준 젊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특히 앙리를 연상케 하는 슛으로 1득점을 한 월콧에게 말이죠.

이 칼링컵 여정은 정말로 중요했던 것이, 새 구장(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막 이사가면서 일시적으로 돈이 없어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아스날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특히 지금은 주전을 내세우지 않고 첼시에게 1-2 패배라는 십자가에 잠시 못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빅네임 영입보다 유망주를 중요시 하는 갓-벵거의 철학이 월콧 같은 선수를 앞세워 부활하여 "로만 제국"의 맘몬을 무너트리고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매우 중대한 신앙적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 월콧은 사이드에서는 흘렙과 로시츠키에 밀려서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 포워드에서는 같은 칼링컵 멤버인 반 페르시가 먼저 앙리의 뒤를 이어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무엇보다 아스날의 젊음의 대표주자인 파브레가스는 05-06 챔피언스리그에서 선발로 출장했을 정도로 일찍 신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월콧이 중요했던 것은 그가 "앙리의 후계자"로 기대되었기 때문이었죠. (아스날이 무시하면서도 은근히 갈망해온 잉글인 것도 한 몫했고요)

월콧은 아스날에서 번뜩이는 순간이 많았고 397경기 출장에 108골이나 넣은 엄청난 선수이기는 했지만 따져보면 (앙리를 비롯해서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들과는 달리) 올타임 베스트XI도 아니었고, 한 시즌이라도 리그를 지배하지 못했고, 내구성이 약하고 몇가지 약점들로 인해 전술의 영향을 많이 받느라 꾸준함에 대한 신뢰도 잘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앙이 굳건한 동안에는 언제나 당연히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월콧이 이제 떠나는데 12년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숫자"로 다가오네요. 특히 "언제나 당연히 있는 존재"라는 것에는 "언제나 젊은 선수"라는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어서 나이를 자꾸 생각하지 않게 되는데 벌써 우리 나이로 30이네요. 떠날 떄가 되었죠.

세스크가 나가고, 반 페르시가 나가고, 결국 외질과 산체스가 들어오고 나서야, "아 월콧도 나갈 수 있지"라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외질과 산체스의 영입은 "유망주 육성을 통한 맘몬으로부터의 구속" 신앙의 확실한 종언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입니다.

월콧과의 인연이 하나 있다면 제가 직관했던 경기의 골을 넣었다는 점이네요. 그간 부상도 많이 당하고 포지션도 바뀌고 역할도 바꿔가면서 몸도 마음도 고생을 많이 했고 우리에게 즐거운 순간도 정말 많이 선사했으니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함께 뛰어왔던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배신자 딱지를 받으면서 이적하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