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안84의 웹툰 '복학왕'과 삭의 웹툰 '헬퍼 2: 킬베로스'가 여성 혐오적 표현 등으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논란이 불거지자 웹툰 작가들은 각각 사과에 나섰고, 누군가는 독자들의 비판을 두고 '시민독재'라고 발언해 다시금 오래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서울YWCA는 지난 10일 '이 웹툰, 나만 불편해?'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여성 혐오 웹툰에 관한 최근의 논란과 쟁점을 짚어보고, 웹툰 속 여성 혐오를 멈추기 위해 어떠한 논의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 웹툰 속 여성 성적 도구화·젠더 기반 폭력 문제 심각

서울YWCA가 지난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네이버 웹툰 및 카카오 페이지 요일별 인기 웹툰 상위 4위 내 등재된 53편(네이버 26편, 카카오페이지 27편, 각 최신 20회 차)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적 도구화 6회 차 △젠더에 기반 둔 폭력 부각/강조 5회 차 △성차별적 고정관념 4회 차 △외모에 따른 차별 1회 차 등 총 16회 차로 조사됐다.

서울YWCA 여성운동국 강유민 활동가는 "2018년에 비슷한 조사를 진행했을 때도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며 "성적 도구화로 지적된 사례들은 권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여성, 여성의 몸과 성을 제시하거나 소유 가능한 객체로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성적 도구화 문제만큼 문제가 된 것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부각 또는 강조한 사례다. 온라인 그루밍 등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문제 희화화하거나 성폭력을 '여성을 지배하는 방법'으로 묘사한 것 등이 바로 그 예다.

강 활동가는 "해당 폭력들이 모두 사소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스토리의 일부로 폭력을 다룬다고 할지라도 그 폭력의 맥락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사소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았는지에 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웹툰 속 백래시? 여성주의적 비평·비판에 대한 반발

'웹툰 속 여성 혐오의 역사-페미니즘 백래쉬 이후 웹툰은?'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위근우 평론가는 웹툰에서 반복되는 양상을 △서사 내 여성의 주변화 △여체 노출 및 대상화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강화 △여성 비하 △욕받이용 여성 캐릭터(민폐) △여성에 대한 징벌 서사 등 6개로 범주화했다.

위 평론가는 '외모지상주의'에서 양다리 걸친 여성을 구타하는 장면을 예로 들며 "이게 남성 캐릭터가 얼마나 나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불필요하다고 본다. 얄밉게 굴다가 민폐 캐릭터였다가 맞으니 통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나는 이것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때리는 것으로 사이다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래시는 사회 혹은 정치적 변화로 인해서 기득권이 자신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낄 때 반발하는 현상"이며 "웹툰에서의 백래시는 남성 중심적인 소녀만화의 장르적 관습과 서브 컬처 커뮤니티 문화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평·비판에 대해 반발하고, 오히려 정치적·윤리적으로 퇴행하는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백래시를 정당화하는 논변들이 있다. '작품은 작품이다' '혐오·차별 표현의 제약은 표현의 자유 제약이다' '창작자의 역량을 제한한다' '여성주의자들의 극성은 갈등만 심화한다고 말한다' 등"이라며 "하지만 현실을 보면 기안84는 지난해 5월과 같다. 가만히 두면 절대 자정 노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 웹툰 속 혐오 표현, 플랫폼에도 책임이 있다…논의의 장으로 들어와야

그렇다면 웹툰 관련 논쟁에서 웹툰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이 따라오게 된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김수아 부교수는 "플랫폼은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또한 알고리즘과 추천을 통해 필터링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플랫폼은 콘텐츠 유통의 책임이 있다"며 "이를 작가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교수는 트위터와 유튜브가 각각 규제를 강화하고 커뮤니티 가이드를 만든 것처럼 플랫폼이 혐오 표현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하고 선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플랫폼의 자율규제 대부분이 해당 게시물의 삭제이며, 혐오 표현의 규제 역시 주로 욕설·비하·비하만 포함되는 것 등 한계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건 플랫폼에서 어떤 혐오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다"며 "시민과 작가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같이 논의해야 한다. 플랫폼이 해당 논의에서 물러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자율규제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규범 필요…차별금지법 마련 중요

올해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이 거듭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논란이 일자 일각에서는 웹툰자율규제위원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나 '이태원 클라쓰' '메모리스트' '루갈' 등 웹툰이 점차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영역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웹툰의 혐오와 차별적 표현 역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홍난지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은 "'차별' 항목을 재정립하기 위해 '웹툰의 차별 표현에 대한 인식 실태 연구'에 착수했다. 웹툰 작가, PD들 등에게 자가진단표 차별항목에 대한 보완자료로 사용되길 기대한다"며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판단하면서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건전하고 자발적인 논의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근우 평론가는 "자율성이라고 하는 것을 '자기 멋대로'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벌을 주지 않더라도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규범적 근거들을 제공해야 한다"며 "자율규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구속할 만한 규범적 요소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가들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자율적인 판단 근거가 부족한 만큼 이를 명확하게 제시해 줄 차별금지법이 마련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위 평론가는 "차별금지법이 나올 때는 적어도 규범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무엇이 훼손되면 안 되는지 규범이 마련되면 '차별표현이니 하면 안 돼'라고 말할 때 입증 부담이 줄어들고 납득해야 할 강제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수아 부교수도 "차별금지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혐오 표현 규제가 힘든 것이다. 과도한 규제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게 되고 표현의 자유가 우선된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웹툰뿐 아니라 포괄적 여성 혐오 등 차별을 용인하지 않으며 인격권 침해에 포함된다는 걸 법으로 최소한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