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추행 피해자가 겪은 국민참여재판..."울다 얘기하기를 반복해"

A 양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6년 엄마의 지인이자 집주인이었던 B 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자주 집을 드나들던 B 씨가 A 양의 엉덩이를 치는 등의 행동을 했던 겁니다. A 양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집안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B 씨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결국, 1심 재판부였던 춘천지방법원은 피고 측이 요청한 국민참여재판을 받아들였습니다.


B 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 있다. 벌금형만 나와도 직장을 잃게 된다'며 변론을 펼쳤습니다. 술렁이는 법정의 공기는 A 양에게도 느껴졌습니다. 이후 A 양은 법정에서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질문과 이어지는 불신의 눈초리, 참다못해 터져 나온 눈물까지 겹쳐 법정에 선 내내 머릿속이 새하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녹취록을 확인해보니 피고 측 변호인은 A 양이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하면 '정말 안 나느냐'고 되묻거나 '그래도 기억이 나는 게 있을 거 아니냐'며 압박했습니다. A 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을 하거나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A 양은 "울다 얘기하길 반복하며 점점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다"며 "표정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가림막 없이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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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7배…"악용 우려"

성범죄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은 무죄율이 비교적 높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KIC)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열렸던 국민참여재판의 평균 무죄율은 10.9%인데 이 가운데 성범죄 사건의 경우 18.8%나 무죄가 나왔습니다.


일반 재판보다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이 더 높은 건 어느 범죄나 비슷한 추세지만 특히 성범죄의 경우는 무죄율이 더 높습니다. 살인 등 주요 4대 범죄의 경우 일반 재판보다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무죄율이 5배 더 높지만, 성범죄 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이 일반 재판보다 7.5배나 더 높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이 피고인에게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유도 국가대표 출신 '왕기춘 사건'에서도 왕 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성범죄에 대해 더 보수적인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배심원들이 왜곡된 성적인 통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재판 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들이 피해자들한테 주어지기도 해 2차 가해의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될 경우 항소심에서 이를 뒤집기도 어렵습니다. 2008년부터 10년간 국민참여재판이 항소심에서 파기되는 경우는 29%로 일반 재판(41%)보다 낮게 조사됐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항소심에서 새로운 혐의가 추가되지 않는 이상 원심판결이 존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김 연구원은 "(성범죄는) 기존 범죄들처럼 명확한 물증이나 증거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범죄의 영역인데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성폭력 범죄 전체에 대해서 특히 피해자가 요구했을 때에는 더 적극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하 출처)

http://n.news.naver.com/article/056/0010918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