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

 

바위가 되고 내가 되고

삼천 겁 악연의

바람이었나 보다

 

온몸이 부서져라

산을 오르며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었나 보다

알록달록 가을중턱

물들이며 피어나던 나는

 

병든 오후

햇살은 담장 밑에 가만히

드러 누웠다.

 

빛 바랜 이파리

바람 따라 쿨럭이다

 

낮은 돌담을 휘돌아

바람은 왔다

 

봉당으로 장독대로

여윈 햇빛 가로막은

 

누르던 이파리

힘겹게 붙잡은 어미손

제풀에 손 놓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