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리플레이]MBC가 찾아 만들어낸 ‘선을 넘는 녀석’ MBC는 악용하고 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오는 8월 MBC 교양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의 새 시즌이 방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MBC 예능에선 ‘선을 넘는 녀석’이 활동 중이다. 프리랜서 선언을 한 전 JTBC 아나운서 장성규 이야기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마리텔 2>)에 출연 중인 그는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라며, 매운 음식 먹기 대결 중 “디진다(뒈진다)”처럼 아슬아슬한 ‘비방송용’ 발언을 한다. 매운맛 때문에 잠시 판단에 오류가 생긴 걸까. 하지만 그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아이즈원 멤버 강혜원이 맨발로 집은 종이컵을 보며 본인 물컵으로 쓰겠다고, 강혜원의 발에선 라벤더 향이 난다고도 말한다. 장성규가 여성의 발에 어떤 의미를 두고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에서 걸그룹을 광고 모델로 세우며 여성 체취를 강조한 식품이 등장했던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여성의 발과 발 냄새에 대한 성적인 소비 맥락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적어도 그가 그 코멘트를 웃음 코드로 썼다면, 그것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방송에, 그것도 지상파 방송에 노출되기엔 부적절하며, 심지어 당사자 여성이 있는 앞에서라면 더더욱 부적절하다. 역시 옆에 강혜원을 둔 상태에서, 옷 빨리 갈아입기 게임을 앞둔 일반인 남성 참가자에게 “팬티까지 갈아입을 거냐”고 묻는 건 어떤가. <마리텔 2> 특유의 라이브 댓글은, 그리고 파트너인 정형돈은 “선 좀 넘지 말라”고 하지만, 누구도 그 상황에서 여성 출연자가 느낄 불쾌감이나 민망함에 대해서는 고민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이걸 그대로 본 방송에 내보낸 제작진 역시 고민은 없어 보인다.

프리랜서 선언한 아나운서 장성규
마리텔2서 비방송용 발언 뱉어내고
여성 발에 집착 등 부적절한 행동
출연자도 제작진도 고민·사과 없어

김구라·감스트·기안84 등 발탁해
리스크 큰 직설화법 외부인에 맡겨
수위 조절·자정 능력 넘은 ‘외주화’
제작진은 유체이탈 자막으로 회피

제작진 “섭외할 때까진 몰랐다”며
같은 수준 패거리가 짜고 치는 농담
사실상 방관하며 ‘노골적인 공모’


해당 방송은 이제 막 자유의 몸이 된 천둥벌거숭이 방송인의 지상파 예능 도전기처럼 구성되지만, 실은 제작진의 허용 아래 젊은 여성 출연자를 병풍처럼 두고 성적 농담을 비롯한 아무 말을 내뱉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신선하거나 참신한가? 나이 있는 남성 상사와 젊은 여성 직원이 있는 조직에서 신물 나게 볼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장성규의 선을 넘는 ‘드립’을, 그리고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마리텔 2> 제작진의 판단을, 그것도 모자라 트위터 공식 계정으로 ‘선을 넘는 녀석 장성규 모음.zip’이란 타이틀의 영상 모음(위에서 말한 내용들을 포함해)을 올리는 MBC의 속없음을 하나하나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마리텔 2> 제작진의 수위 조절 문제, MBC의 자정능력 부족으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상황은 ‘막말의 외주화’라는 오래된 방법론의 연장선에 있다.

가장 가까운 감스트의 사례를 보자. MBC는 2018 러시아 월드컵 홍보대사 및 디지털 해설 담당으로 감스트를 발탁했고, 이후 그는 MBC <진짜 사나이 300>에도 출연하며 그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이후 한국 대 콜롬비아 국가대표 축구 중계 TV 해설까지 맡고, 예능 프로그램 <호구의 연애> 스핀오프 웹 예능 <호구의 전당> 메인 호스트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MBC는 그를 확실히 밀어줬다. 유망주에 대한 투자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축구 TV 중계에선 상대팀 중계진과 그들의 언어를 비하하는 수준의 농담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사과해야 했으며, 이후 인터넷 생방송 중 성희롱 논란으로 <스포츠 매거진>을 포함한 MBC 프로그램에서 잠정 하차해야 했다. 그냥 MBC가 운이 없던 걸까. 그렇기엔, 그는 지상파 진출 이전에도 이미 혐오표현의 대표주자인 BJ 철구와 거리낌 없이 합동 방송을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방송 중인 여성 BJ에게 “의첸(의상 체인지, 노출 있는 의상으로의 변경 요청)”을 요구했던 바 있다. 그런 그를 섭외하고 활용한 MBC는 최근 장성규의 방송이 그러하듯, 명백한 혐오발언이 아닌 이상 시청자가 웃고 화제가 되면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처럼 리스크가 큰 직설 화법을 외부인에 가까운 인물에게 외주 주는 방식은 역시 인터넷 방송 출신인 김구라의 지상파 진출 초기와 흡사하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가 독한 토크로 명성을 얻은 건, 당시 다른 MC들조차 당황할 수준의 공격적이고 종종 무례한 김구라의 방식, 그리고 그의 훨씬 악질적인 과거를 눈감아준 덕이다. 하지만 그런 김구라조차 이젠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할 정도의 방송계 인사이더가 되며, 지상파는 또 다른 외부인에 눈독을 들인다.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또 다른 MBC의 아들인 기안84의 성공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고기를 자르던 가위로 갑자기 머리카락을 다듬고 커피포트에 라면과 치킨을 함께 끓이던 그의 모습은, 방송인을 떠나 사회화된 30대 성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방송은 그의 모습을 사회화되지 못한 것보다는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엉뚱한 캐릭터로 재구성했고, 그의 무례함을 오가는 행동들은 리얼리티쇼 포맷 안에서 솔직하고 재밌는 것으로 쉽게 용인됐다. 그가 혐오발언 수준의 막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2016 MBC 방송연예대상 자리에 패딩을 입고 왔던 것처럼 T.P.O.를 고려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그의 방식에 잠시나마 브레이크가 걸린 건 배우 성훈이 참여한 패션쇼에서 크게 이름을 부르는 등 제대로 민폐를 끼친 이후다. <나 혼자 산다> 측의 후속 조치는 졸렬했다. 그토록 기안84의 아무 말 아무 행동을 부추겨놓은 것에 대해 반성하는 대신, 한의사 이경제의 신뢰할 수 없는 진단을 빌려 ‘주제 파악 필요’라는 자막으로 무안을 주고 책임을 회피했다.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이지만, 리스크가 큰 작업을 외주 주는 원청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프리 선언을 하고 현재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역시 수위 높은 농담을 던지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인 장성규를 보며 이러한 ‘막말의 외주화’ 선례들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를 섭외할 때까지만 해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마리텔 2> 제작진의 자막을 보라. 미처 알지 못했음에도 문제가 될 만한 코멘트들을 결국 방송에 내보냈다는 점에서 해명도 변명도 아닌, 같은 수준의 패거리끼리 짜고 치는 농담에 불과하다. 이제 막 지상파에 진입한 장성규가 매운 음식을 먹고 우유를 마시다 “모유 마시고 싶다”고 선을 넘는 ‘드립’을 치고, 기존 방송의 인사이더인 정형돈은 “선 좀 넘지 말라”고 호들갑을 떨고, 제작진은 짐짓 뒷짐을 지고 방관하고 있는 구도. 이것은 은밀한 척 노골적인 공모다. 마치 지상파가 유연하게 외부 플랫폼의 신선함을 수혈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급한 농담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다. 선을 넘는다고 하지만 방송의 하한선을 낮추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재 <마리텔 2>의 수준이다. 앞서 말했듯 이런 식의 공모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백종원이라는 전천후 방송인을 실질적으로 배출해냈던 브랜드의 현재가 이 정도라면, MBC는 좀 더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