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를 쓸 거면 대체교사 구해오라”…안 바뀐 어린이집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정부, ‘대체교사 인력뱅크’ 추진에도 현장선 우려 목소리
보조교사 구하기도 힘든데 연장보육교사는 더 찾기 힘들어
원장이 보장된 연차휴가는 설날 등 공휴일에 사용 강요까지
연차 편법 사용 땐 제재하고 휴식 보장 가이드라인 내놔야


“연차를 쓰고 싶을 때 대체교사를 구해두고 가야 하나요? (원장님이) 매번 ‘(대체)교사를 구해둬’라고 말씀하시거든요.”(한 어린이집 교사)

정부가 지난해 2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하겠다면서 근로기준법과 보육체계를 손보겠다고 했으나, 이후에도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를 설·추석 등 공휴일에 사용하는 데 동의한다는 합의서를 강요하고 있다.

보육교사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말 “원장이 ‘연차 유급휴가 대체합의서’라면서 사인을 하라는데, 혹시 작성하신 선생님들 계신가요?”라는 문의글이 올라왔다. 글과 함께 올린 대체합의서 사진에는 법적으로 주어진 연차 유급휴가 20~22일 중 대부분을 설·추석 등 법정공휴일과 대체휴일 및 임시공휴일에 사용하는 것에 노사가 합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에 사인할 경우 연차휴가는 어린이집에서 정해준 날짜인 하계·동계휴가일에 한해 6~8일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대체합의서는 근로자 대표와 사측(원장)이 합의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처럼 제대로 된 안내 없이 개별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 사인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과도한 노동부담을 줄이기 위해 휴게시간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했지만, 교사들이 쉬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했다. 보육교사 커뮤니티에는 “0세반에 4~5명의 어린이를 배정하고선 교사가 구해질 때까지 몇달만 돌보라고 하네요” “법적 휴게시간 1시간 포함해서 9시간을 원에서 일하면서 보내는데, 돈은 8시간에 대한 것만 받고 있어요”라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법에 따르면 교사 1인이 담당해야 할 어린이는 3명을 넘어선 안되고, 유급 휴게시간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보육교사 근무 개선을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놨다. 내년 3월부터 보육시간이 오전 9시~오후 4시인 기본보육과 오후 4시~오후 7시30분인 연장보육으로 나뉘는데, 연장보육 전담교사를 원활히 배치하기 위해 ‘연장보육교사 구인구직 인력뱅크’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연장보육교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 데 따른 대책이다. 연장보육교사 1인당 인건비 111만2000원도 정부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육체계 개편만으로 현장 교사들의 휴게시간 확보가 제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전북 지역에서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임선영씨는 “무주나 장수 같은 군단위에서는 연장보육교사가 아닌 보조교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선호 시간대가 아닌 오후시간대에 일할 연장보육교사는 더 찾기 힘들 것”이라며 “연장보육으로는 보육교사 휴게시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현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은 “현장 보육교사 인력이 부족해 6명의 교사가 다 합쳐서 연차휴가를 1년에 10일 쓰는 곳도 많은 것이 현실인데, 연장보육교사를 채용한다고 해서 연차휴가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지부장은 “보조교사를 늘려서라도 가장 노동강도가 센 오전·점심시간대 상주 인력을 늘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